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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문일침432] 북 지도자의 비행기 이용과 김일성 주석이 허리를 다친 사연

중국시민 | 입력 : 2018/03/28 [16:24]

 

26일 밤부터 소문이 무성하던 “김정은 방중설”이 28일 베이징시간으로 7시 30분에 중국 신화통신이 보도하면서 확인되었다. 

 

김정은 위원장 부부만이 아니라 최룡해, 박광호, 이수용, 김영철, 이용호 등 쟁쟁한 요인들이 동행했으니 굉장한 대표단이었다. 한국과 일본의 숱한 전문가들과 언론들이 추측하던 김여정, 김영남은 없었다. 정보능력이 얼마나 한심한가를 말해준다. 

이틀 남짓한 동안에 주동적으로 혹은 수동적으로 숱한 기사들과 설들을 접하면서 눈살을 찌푸릴 때가 많았다. 추측과 상상이 너무 많은 반면에 알맹이는 너무 적어서였다. 왜 비행기가 아니고 기차를 이용했느냐는 동기분석 가운데 한국의 어느 전문가는 기차방문이 더 폼 나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으니 도대체 누가 그런 전문가에게 월급을 지급하는지 의문스럽다. 

 

김일성 주석,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기차를 많이 이용한 일을 두고 한국에서 별별 소리가 다 나왔다. 공포증 때문이니 뭐니 의도적인 폄하들도 많았다. 사실 김일성 주석은 1950~ 60년대에 중국, 소련, 인도네시아 방문 등에서 비행기를 이용했고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국내에서 비행기를 자주 탔다고 한다. 그러다가 어느 시점에서 기차 이용이 늘어났는데, 김일성 주석이 1980년대 초반 소련, 동유럽 방문에서 중국을 거치면서 기차를 타고 간 건 항일무장투쟁시기 싸웠던 산천들을 바라보는 의도가 있었다 한다. 김일성 주석이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3권 9장 6절 “인민의 품”에서 썼다시피 그런 산천들을 다시 밟기에는 어려움이 많았던 것이다. 

 

“나는 단 몇달동안만이라도 보통려권을 가진 평민이 되여 빨찌산시절처럼 지하족을 신고 행전을 치고 배낭을 메고 줴기밥을 먹으면서 때로는 바지가랭이를 걷어올리고 무릎을 치는 강하도 건느면서 초목에 묻힌 지난날의 격전장도 돌아보고 전우들의 무덤에 잔디도 떠옮기고 나를 목숨으로 도와주고 보호해준 은인들과 인사도 나누고싶었다.

 평민생활에 대한 동경과 향수는 어떤 정객에게나 다 있는 모양이다. 국가관리를 책임진 수반이 평민생활을 부러워한다고해서 이상할것은 조금도 없다.

 해방후 나는 여러차례에 걸쳐 중국과 쏘련을 방문할 기회를 가지였다. 만주와 쏘련의 중앙아세아지방에는 내가 만나보아야 할 전우들과 은인들이 많았다. 그러나 국가수반이라는 공식적 직무는 매번 나로 하여금 방문일정에 사사로운것을 포함시킬수 없게 하였다.”

 

직접 밟지는 못하지만 보기는 하자. 이런 의도로 중국의 동북 경내를 거치는 장거리 기차여행이 진행되었고 김일성 주석은 익숙한 산천들을 내내 망원경으로 보면서 옛일을 회상하고 옛 전우들을 그렸다 한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경우에는 외국방문에서의 기차 이용에 실태를 보다 잘 알려는 의도가 담겼다 한다. 기차를 타고 가노라면 전에 지나갔던 고장들의 변화들을 실감할 수 있었고, 또한 나름대로의 집계와 계산으로 뭔가 알아낼 수도 있었다. 예를 들어 21세기 초의 러시아 방문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가면서 마주 오는 기차들을 세어보았다 한다. 자신이 잘 때에는 남에게 집계를 맡겼는데, 그를 통해 시베리아 철도의 인원, 물자 운수 현황과 운수능력을 가늠했다고 “장군님 일화”에 나온다. 

 

비행기 방문이 줄어들고 사라진 원인에 대해 조선은 특별히 설명한 적 없으나, 중국의 책에는 그 이유를 짐작할 만한 내용이 있다. 

지난 해 10월 초에 발표한 정문일침 338편 “김일성주석, 김평일의 손녀도 사랑으로 직접 키워”(http://www.jajusibo.com/sub_read.html?uid=35899&section=sc51&section2=)에서 언급한 중국 도서 《金日成与张蔚华(김일성과 장울화)》173쪽에는 장울화의 아들 장금천(张金泉, 장진취안)과 딸 장금록(张金禄, 장진루)이 1985년 4월에 처음 조선을 방문하여 흥부 초대소에서 김일성 주석과 처음 만나 40여 분 울안에서 환담한 뒤 대청으로 들어가는 대목이 나온다. 

 

손님들과 함께 집에 들어가느라고 층계를 오를 때 일꾼이 김일성 주석을 부축했다. 그러자 김주석이 고개를 돌려 장금천에게 해석하기를 

“어, 언젠가 동유럽 국가로 방문하러 갔는데 비행기가 강렬한 기류를 만나 너무 세게 들추는 바람에 허리를 풀쳤다.(哦, 有一回,我到东欧国家访问,飞机遇到了强烈气流,颠簸太猛,把我的腰扭了。)” 

1987년 4월의 방문에서 장씨 일가와 함께 김일성 주석을 만난 중국 대사 종극문(宗克文, 중커원)이 김주석에게 건강하시니 조선인민의 행복이고 우리도 조선인민과 함께 이 행복을 누림다면서 우리도 아주 기쁘다고  말했다.(“您今年75岁,身体很健康,精力很充沛,还是青春年代,这是朝鲜人民的幸福,我们也同朝鲜人民一道分享这一幸福,我们也非常高兴。”)  

그러자 김일성 주석은 고맙다고, 나는 무슨 병이 없고 허리가 아플 뿐이라고 대답했다.(“谢谢。我没什么病,就是腰疼。”) 

 

다른 부분에서는 또 김일성 주석이 워낙 정구(网球, 테니스)를 쳐서 신체를 단련했는데 허리를 다친 뒤부터 그만두었다는 내용이 나온다. 

중국에서 공개발행된 책들에는 조선과 그 수령들에 관해 흥미로운 정보들이 엄청 많다. 그런 보물고를 무시하고 그 무슨 내막을 운운하는 “북한 소식통”, “북한 전문기자”, “북한 전문가”들은 평소에 도대체 무슨 일을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구체적으로 김일성 주석이 어느 해 어느 나라를 방문하다가 다쳤는지는 필자가 당분간 밝혀내지 못하지만, 그 동유럽 방문 경력으로 김일성 주석의 비행기 이용에 제동이 걸렸으리라는 건 짐작할 수 있다. 조선을 “독재국가”라고 단정하는 사람들은 수령이 맘 먹은 대로 한다고 여기는데 실은 그렇지 않다. 김일성 주석의 회고록에는 위에 인용한 부분 바로 아래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나라를 령도하는 국가수반이 일상생활에서 구속을 느낀다고 하면 사람들은 아마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수 있는가?》고 하면서 고개를 기웃거릴것이다. 내가 어느 지방에 현지지도를 가려고 하면 어떤 일군들은 《수령님, 그 지방 날씨가 좋지 않습니다.》라고 하며 내가 아무아무데 가서 사람들을 만나보겠다고 하면 《수령님, 그쪽은 진펄이니 자동차가 다닐수 없습니다.》라고 말한다. 물론 나를 위한 걱정이고 념려이지만 그것은 나에게 있어서 일정한 구속으로 되지 않을수 없는것이다.”

 

역설적으로 바로 “혁명의 수령”이기에 숱한 구속을 받게 된다. 일군(간부)들의 개인적인 권고 외에도 정치국의 결정 같은 공식적인 구속도 생겨난다. 전후 강원도 쪽이 복잡할 때 김일성 수상이 철령을 넘어서는 안된다는 결정을 조선노동당 정치국이 지었는데, 김일성 수상은 한동안 지키다가 결국 사업수요로 철령 동쪽으로 갔다 한다. 

 

비행기 이용 문제도 아마 공식적인 혹은 비공식적인 결정이 있었을 것이다. 김정은 시대에 들어와 최고지도자가 국내에서 전용기를 타고 움직인 경우가 늘어났으나 차량 이용이 훨씬 많다. 그러니까 외국 방문에서 꼭 비행기를 타야 김정은 스타일이라는 법은 없다. 

이제 대외활동이 늘어나서 당일치기, 이틀치기 회담들이 많아지면 김정은 위원장이 비행기를 타고 외국을 오갈 가능성은 충분하다. 단 지금까지는 모든 추측이 아무런 의의도 없다.

 

그리고 보도에서는 25~ 28일 방문이라고 하지만 조선(북한)의 최고지도자가 나라를 비운 날은 26, 27일 이틀이다. 사실 주목해야 할 점은 그 동안 조선에서 누가 국사를 맡았으냐가 아닐까 싶다. 그리고 또 유의해야 할 점은 김정은 위원장이 신년사에서 자신의 책상 위에 놓였다고 선포한 핵단추가 어떻게 되었느냐이다. 핵트렁크 형식으로 김정은 위원장을 따라 중국에 다녀갔었는지 아니면 여전히 김정은 위원장의 책상 위에 놓이고 누군가 만일의 경우에 누르도록 했는지... 

“참수작전”을 운운하면서 김정은 위원장만 제거하면 조선난제들이 다 풀리리라 여기는 사람들이 한국, 미국, 일본에 꽤나 많은 상황에서, 조선이 만일의 경우에 대비하여 대리인을 미리 정하지 않았을 리 있겠는가? 어느 시점에서 어떤 방식으로 대리인을 공개하는 순간부터 “참수작전”은 존재의 가치를 잃고 만다. 

아무리 나쁜 평화도 아무리 좋은 전쟁보다 낫다는 말이 있는데, 결국에는 회담으로 반도의 난제들을 풀어야 할 것이다. 회담을 성공시키려면 서로 잘 알아야 한다. 그러자면 평소에 정보들을 모아야 하고 그것도 확실한 정보들을 모아야 한다. 

 

10여 년 동안 필자가 발표한 수많은 글들에는 “카더라” 통신에 오염된 한국인들은 믿기 싫은 내용들도 많겠다만 뜬소문이 아닌 확실한 정보들을 많은 이들에게 제공했다는 점이 자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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