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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식한 시진핑) 현 중국역사는 5%만 진실, 나머지는 완전한 허구

한국이 중국의 일부가 아니라, 중국이 한국의 동네북

성헌식 컬럼니스트 | 입력 : 2017/04/25 [18:00]

 

최근 한중간에 역사전쟁이 치열하고 뜨겁게 달궈지고 있다. 발단은 지난 4월초 중국 시진핑 주석이 미국을 방문했을 때 자신에게 한국은 중국의 일부였다라는 말을 했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인터뷰 기사가 월스트리트저널(W.S.J)에 실리면서부터이다. W.S.J"실제로 트럼프가 시진핑의 말을 그대로 옮긴 것인지 시진핑의 말을 오해했는지 분명치는 않지만, 중국 국수주의자들의 의견을 여과 없이 옮긴 트럼프의 처사는 경솔했다고 지적했다.

 

W.S.J이 보도한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 전문은 다음과 같다. “그리고 그(시진핑)는 중국과 한국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했다. 북한만이 아니라 한국 전체를 이야기했다. 수천 년의 역사와 많은 전쟁에 대해 말했다. 한국은 실제로 중국의 일부였다고 하더라. 10분 정도 설명을 들으니 북한 문제가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는 내용이다.

 

시진핑의 한국은 중국의 일부라는 말은 2002년부터 2012년까지 중국이 추진했던 동북공정의 핵심이론인 고구려와 발해는 당나라의 지방정권이다.”와 같은 의미의 말이다. 동북공정을 추진하면서 중국 정부는 한결같이 동북공정은 정부차원에서 추진하는 프로젝트가 아니라 민간차원에서의 연구활동이다.”라고 둘러댔는데, 이번에 그게 아니라는 것이 명백하게 확인된 것이다   

 

▲ 세계를 움직이는 두 정상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과 중국의 시진핑 주석     © 편집부

 

당연히 한국 정부와 많은 역사관련 단체들이 발끈했다. 가뜩이나 한국의 사드 설치에 대한 중국의 후안무치한 보복으로 인해 감정이 많이 상해있던 국민들은 시진핑의 발언에 반발하며 분노까지 느끼게 되었다. 이렇듯 사태가 심각해지자 중국 외교부는 정례브리핑에서 "시진핑 주석의 말로 인해 한국 정부와 국민들이 우려하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 "한국 국민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그 말은 시진핑은 그렇게 말한 적이 없는데, 트럼프가 지어낸 말이니 걱정하지 말라는 뜻인지 시진핑이 역사에 대해 잘 몰라 실언한 것이니 걱정하지 말라는 뜻인지 말로만 그러는 거지, 실제로는 중국은 한국을 중국의 일부로 만들 염려가 없으니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여하튼 심히 불쾌하기 짝이 없는 언사라 아니할 수 없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으로 촉발된 한·중 역사대립에다가 미·중 정상회담 기록물을 공개하라는 등 한국의 요구가 거세지자 미국 정부는 "우리는 한국이 수천 년간 독립적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We know well that Korea has been independent for thousands of years)"라고 밝혀 시진핑의 발언이 초래한 한중간의 갈등과 대립으로 타오르고 있는 불길 진화에 나섰다.

 

우려되는 점은 세계를 움직이는 G2 국가의 정상회담에서 시진핑이 동북공정과 똑같은 논리를 자신의 정치적 견해로 말했다는 것이다. 어쨌거나 이번 시진핑의 발언은 역사학자가 아닌 중국 최고정치인의 입에서 나왔다는데 심각한 문제가 있으며, 또 한국역사에 대해 잘 모르고 있던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한국에 대한 역사인식의 전환이 있다면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극단적인 경우 북한에서 급변사태 발생 시 G-2의 잘못된 역사인식으로 인해 한반도 문제가 마치 중국의 내부문제로 인식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 북한에서 급변사태 발생 시 G-2의 시나리오     © 편집부


중국의 최고지도자 시진핑은 과연 중국의 역사를 제대로나 알고 그런 말을 했을까? 베이징 징화(京華)학교의 역사교사인 위안텅페이(袁騰飛)씨는 "일본도 역사교과서를 왜곡하지만 중국만큼은 아니다"면서 "중국 역사교과서에 기술된 내용 중 진실은 5%도 되지 않고 나머지는 완전한 허구"라고 주장했듯이, 그런 중국사를 과대포장한 시진핑은 시간을 내서 역사공부를 새로 해야 할 것이다.

 

초라하고 불쌍했던 중국의 역사 

 

중국의 삼황오제(三皇五帝)의 삼황(三皇)인 태호복희(太皞伏羲), 염제신농(炎帝神農), 황제헌원(黃帝軒轅), 5()인 소호금천(少昊金天), 전욱고양(顓頊高陽), 제곡고신(帝嚳高辛), 제요도당(帝堯陶唐), 제순유우(帝舜有虞) 모두가 동이족이었으며, 중국인의 시조 황제헌원은 우리 배달국 14대 자오지 환웅 치우(蚩尤)천왕과 10년간 73회를 싸워 모두 졌으며 마지막 탁록전투에서 패해 항복하고는 유배까지 가게 된다.

 

중국사 최고의 성군(聖君)으로 잘못 알려져 있는 요임금은 조선의 단군왕검이 보낸 우순(虞舜)에게 힘이 딸려 굴복하고는 두 딸을 바치고 나라마저 넘기게 된다. 공빈의 <동이열전>순임금(虞舜)이 동이에서 태어나 중국에 들어와 천자가 되어 다스리기에 이르니 많은 왕들 중에서 탁월하게 뛰어난 분이셨다.”에서 알 수 있듯이 순임금 역시 동이족이었다.

 

한자를 만들었다는 창힐(蒼頡)도 동이족이었으며, ()대의 갑골문은 당시 황하 이북에 있던 북방민족인 동이족이 만들었다. 또한 책력과 육십갑자 역시 동이족의 산물이다.

 

중국 전설상 첫 나라라고 하는 하()나라 시조 우(), ()나라 시조 설() 역시 동이족이었다. 공빈의 <동이열전>하나라 우임금의 도산회의에 동이의 부루(夫婁)께서 친히 와 주셔서 나라의 경계가 정해졌다.”라는 문구가 있다. 중국인의 첫 국가라고 하는 주()나라를 세운 무왕은 서이(西夷)족이었고, 무왕을 도와 주나라를 탄생시킨 일등공신 강태공(姜太公) 역시 동이족이었다.

 

▲ 동이에 가서 살고 싶어했던 공자 영화    

공자의 후손 공빈(孔斌)이 쓴 <동이열전>동이는 그 나라가 비록 크지만 남의 나라를 업신여기지 않았고, 그 나라의 군대는 비록 강했지만 다른 나라를 침범하지 않았다. (중략) 가히 동쪽에 사는 예의 바른 군자의 나라라고 할 수 있다. (중략) 우리 선조(공자)께서 동이에 가서 살고자 하셨으며 누추하지 않다고 여기셨다.”라는 문구에서 보듯이 중국 사상의 정신적 지주인 공자 역시 동이에 가서 살고 싶다고 했을 정도였다.

 

맹자의 어록인 공손축장구(公孫丑章句)··주의 전성기에도 땅이 천리를 넘는 자가 있지 않았는데, 제나라는 그만한 땅을 소유하고 있으며 닭 우는 소리 개 우는 소리가 서로 들리어서 사방의 국경에 도달하고 있다(夏后殷周之盛 地未有過千里者也 而齊有其地矣 鷄鳴狗吠相聞而達乎四境)”는 문구에서 당시 하··주의 땅은 천리가 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나머지 땅은 바로 동이족이 살던 조선의 땅이었던 것이다. 지금의 중국 땅을 서울시로 비유한다면 고대 중국의 영토는 겨우 현재 서울의 중구(中區) 정도에 불과했고, 나머지는 모두 우리 민족(동이족)이 살던 땅이었다. 동이족 진시황이 중국을 통일했을 때 섬서성과 하남성을 동시에 차지한 적이 있었을 뿐이고, 이후 명나라 이전까지는 그 밖으로 나오지 못한 것이 역사의 진실이라 할 수 있다.

 

중국의 상징인 한()나라를 세운 유방은 흉노 묵돌선우의 유인책에 걸려 평성(平城)에 있는 백등산에서 7일간이나 포위당하게 된다. 그러자 풍전등화 상태인 나라를 구하기 위해 유방의 왕비 여치가 치마끈을 풀어 묵돌 선우에게 몸을 바치고는 포위를 풀고 장안으로 도망쳤다. 이후 유방은 흉노에게 한 왕실의 여인을 선우의 연지로 바친다. 매년 한나라는 흉노에게 솜·비단··쌀 등을 바친다. 한나라 왕과 흉노의 선우 사이에 형제의 맹약을 맺어 화친한다는 굴욕의 협약을 맺는다. 

 

▲ 한나라에서 공주 대신 흉노로 바쳐진 왕소군                                                © 편집부


 시진핑은 과연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랬을까? (2)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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